오작동의 미학

2015년 11월 17일

정현
미술비평, 인하대 교수


디지털 사회는 이미지의 물신화를 부추긴다. 비물질적인 이미지는 물리적인 실체와는 무관하다. 그것이 이미지가 갖는 사회적 권력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권력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디지털 기술은 오래되고 낡은 정보들을 새것처럼 둔갑시키는데 그것은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복원 자체가 가치를 추월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원본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일은 단순히 비물질적인 유산을 지속 가능한 매체로 보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복원은 원본을 되살리는 작업이자 현재의 시대정신을 기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작업은 목소리나 메시지로 나타나지 않고 질감, 조명, 색채, 사운드의 완벽한 (혹은 완벽을 추구하는) 제어로 드러난다. 디지털 사회의 이데아는 사상이 아닌 첨단기술의 퍼포먼스로 대체되는 것이 아닐까?
강민수는 사회 시스템에 관한 질문을 영상, 장소-특정적 작업 그리고 프로젝트 기반의 전시로 전환한다. 그는 관습과 정형화된 사고방식이 실제로 개인의 삶과 인식체계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를 전시를 통해 묻는다. 특히 상당 기간 영상물 보정에 관련된 후반 작업을 하는 회사에 다녔던 작가의 이력이 작업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상당 기간 영화 컴퓨터 시각특수효과 회사에 다녔던 작가의 이력이 작업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당시 그는 디지털 컴포지터로서 영화에서 원본의 컬러, 톤, 불필요한 배경 등을 보정하고 효과를 합성하는 일을 했다. 이런 작업들은 대개 로토스코프(rotoscope)라는 애니메이션 기술을 사용한다고 한다. 로토스코프 실사 장면을 한 컷씩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하는 기법이다. 로토스코프를 이용한 후반 작업은 피부의 톤, 동공의 색깔 등을 자연스럽게 교정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시선의 정치학
로토스코프를 이용한 작업은 가상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수정해야 할 대상을 매핑한 후 명령을 내리면 이 훌륭한 기술은 주어진 명령에 따라 대상에 변화를 준다. 피부색을 바꾸고 동공의 색도 바꿀 수 있다. 이보다 더 역동적인 변화도 가능하다.
“00+07”(2011)의 경우는 동물원 우리에 갇힌 긴팔원숭이를 대상으로 삼은 작업이다. 카메라에 기입된 명령은 상황이나 주변을 무시한 채 오로지 긴팔원숭이만 프레임 안에 촬영되도록 설정되었다. 화면은 오로지 긴팔원숭이만을 보여준다. 발작적으로 팔과 다리가 때론 얼굴의 형태가 늘어나거나 변형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주어진 명령 덕분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대상은 오로지 긴팔원숭이 뿐이기에 관객은 동물원에 갇힌 상태를 인식할 수 없다. 그것은 맥락이 잘린 이미지의 모순이자 인공지능의 명령에 의해 배경의 상실을 지시하고 있다. 작가의 의도는 바로 맥락의 해체가 주체의 해방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대상을 또 다른 틀에 가두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00+04”(2010)은 핀란드의 레지던시 체류 중 제작된 작업으로 자전거 산책로에 놓인 통행금지 표지판이 설치된 상황에서 그곳을 지나는 행인들을 관찰한 영상이다. 촬영 후 작가는 합성 소프트웨어에서 트래커라는 기능을 이용해 행인들의 얼굴을 추적하는 명령을 지시한다. 영상은 사각형의 트랙포인터가 행인의 얼굴을 인식하는 장면으로 채워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통행금지 표지판을 앞에 두고 자연스레 우회한다. 트래커는 간혹 사람을 놓치기도 하고 흐르는 수면을 포착하기도 한다.
강민수는 프로그램의 오류를 일부러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 작업의 동기를 먼저 알아야 한다. 작가는 좌측보행의 시대에서 우측보행의 시대로의 이행을 주목했다. 사실 좌측보행은 일제의 잔재이다. 2010년부터 우측보행을 전면적으로 시행하면서 정부는 경제지표를 설득의 근거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보행의 방향에 대해 누군가는 이념적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담이기도 하지만 21세기가 된 현재까지 한국사회에서 이념에 대한 기준은 일방통행 중인 것만 같다. 강민수는 통행금지 표지를 무시하고 사소한 위반을 범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트래커의 등장과 그 오류를 통해 공공질서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인간의 안전과 편리를 위한 질서가 어떻게 개인의 가치관을 판단하고 통제하는 프레임으로 작동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이처럼 강민수는 기술주의로 비롯된 인식의 오류를 통해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보이지 않는 전체주의적 시선을 비유한다.

신자유주의적 시선
한편 동시대 한국의 현실은 전체주의적 잔재와 더불어 뿔뿔이 흩어진 원자화를 급진적으로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 가치관은 타인에 대한 연민을 허락하지 않는다. 치열한 생존 경쟁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함을 끊임없이 표명해야 하는 사회이다. 한병철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주체들은 행동을 함께할 수 있는 ‘우리’를 형성하지 못한다”라며 원자화된 고독 사회를 우려한다. [i] 한국사회에서의 신자유주의는 전근대적인 남성우월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버물어진 기이하고 비정형적인 가치관으로 비틀어졌다. 개발에 의한 발전의 둔화와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은 욕망의 한계를 끊임없이 경신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개인전 <리더쉽을 가지세요>(2012)는 일반적으로 전시와 갤러리를 인식하는 상투적 관습을 작가의 신체를 기준으로 한 위상학으로 풀어낸 전시이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전시 자체를 하나의 정치적 장치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장신에 속하는 작가의 키 180cm를 기준으로 구성된 전시였다. 출입구에는 낮은 수조와 고양이 모래를 깔아 출입에 불편함을 주었다. 이 역시 자신의 키를 기준으로 제작되었다(01+00, 2012). 발기된 남자 성기 사진이 놓인 좌대의 높이도 자신의 키를 기준으로 삼았다(00+15, 2012). 어떤 기준이라도 소외되는 대상들을 생산하기 마련이다. 180cm라는 신장, 발기된 성기는 신체에 스며있는 사회적 위계를 빗댄다. 무엇이든 남보다 우월한 것을 찾아야만 하는 현실의 풍자이자 ‘고상한 미술’의 프레임을 이용해 우리 사회의 속물주의를 투사한다.
세속적인 욕망 자체가 나쁜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우리의 욕망이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고양창작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근작 “1+12”, “1+13”은 공중파에서 방영된 드라마의 대사들 추출해 이를 남과 여의 대화로 재구성한 영상작업이다. 한국의 드라마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적 산물일 것이다. 그것은 모든 가치, 가치의 모든 것을 추구한다. 그것은 권선징악을 기본으로 하되 본질적으로 운명적 혈연관계와 구원의 상징으로 가족과 사랑을 결론적으로 제시한다. 많은 드라마의 플롯은 운명적 인과성을 강조하는데 대개는 운명이 뒤바뀐 인물들이 인습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모략을 서슴지 않고 개인의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지만 결국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미 너무도 익숙한 스토리텔링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드라마에 몰두하고 극중 인물에 감정이입을 한다. 강민수는 발췌된 대사를 통해 자기개발과 출세지향적 인간의 욕망을 재현한다. 극중 인물을 연기한 남녀배우는 모두 일반인이다. 마치 증명사진을 연상시키는 구도는 영웅과 가장을 반영한다. 강민수는 높은 위치에 걸린 그들을 떠올린 것 같다. 그러나 190cm높이에서 관객에게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말하는 연기자는 유명인도 권력가도 아닌 이웃 같은 사람이다. 익명성과 높이, 그리고 욕망을 대변하는 대사 간의 부조화는 현대인이 일상에서 매일 만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삶의 표면이 투명하게 우리의 욕망을 드러내는 투명사회의 이면에는 “모든 투명성을 벗어나는 유령들의 공간이 생겨난다."[ii] 우리는 국가 내부에서 법의 보호를 받고 살아가지만, 몸으로 느끼는 현실은 자본이라는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벌거벗은 생명’이 아닌지 두려워진다. 아마도 작가는 이러한 공포를 어떤 식으로든 지연시키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좌: 01+13. 2015. 비디오, 내레이션, 13분 28초, 반복. / 우: 01+12. 2015. 비디오, 내레이션, 12분 21초, 반복. /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 설치장면, 고양, 2015년 11월 13일.
LEFT: 01+13. 2015, Video, narration, 13min 28sec, loop. / RIGHT: 01+12. 2015. Video, narration, 12min 21sec, loop. / Installation view of the open studio at MMCA Goyang Residency, Goyang, Korea. December 13, 2015


*이 리뷰는 고양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 De-Position 도록에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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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한병철, 투명사회, 문학과 지성사, 2014, 134쪽
[ii] 위의 책, 193쪽
 


© Kang Minsoo